블랙다이아몬드 앰배서더 루카 크라이크의 남미 파타고니아 신루트 등반
블랙다이아몬드의 앰배서더 루카 크라이크(슬로베니아)가 루카 린디치와 함께 남미 파타고니아를 찾아 6주 동안 등반을 펼쳤다. 둘 다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몹시 가파른 고산등반 루트에 매달려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찔한 고난도 오버행을 넘어서자 그들에게 남은 탈출구란 오직 정상을 넘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아래는 이들의 초등반 기록이다.
사진: 루카 크라이크(Luka Krajnc), 루카 린다치(Luka Lindič)
1월 중순 우리는 파타고니아 등반 기점 엘 찰텐에 도착했다. 6주 동안 지낼 계획이었다. 지난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이곳에 사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정하고 오는 건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자연이 규칙을 정했다. 대신 등반을 앞둔 우리의 마음가짐이란 생각을 잘 하고, 기합을 단단히 넣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게 좋겠다고 서로 다짐했다.
우리는 대상지를 생텍쥐페리봉(2,558m)으로 정했다. 토레 산군에는 등반가가 너무 많았고 그쪽은 벽들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생텍쥐페리봉 남동벽에서는 1998년 마르셀로 갈게라, 오라시오 그라톤 둘이 등반을 시도했다가 6피치까지만 오르고 내려온 전적이 있다. 우리는 1월 말 첫 등반시도에 나섰다. 첫날 9피치를 오르니 좋은 비박 장소가 있어 밤을 보냈다. 이튿날 트래버스 피치를 넘어 오르다가, 계속 오르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 하산했다.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 온 상태에서 구체적인 탈출 계획 없이 오버행을 연속해 오르는 것은 우리가 준비한 위험 정도를 벗어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내려온 뒤 장비를 모두 챙겨 다시 엘 찰텐으로 돌아왔다.
내려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왜 이렇게 가파른 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려는 이들이 거의 없는지를 깨달았다. 이런 중압감 넘치는 벽의 초등은 대다수가 고정로프를 사용해 유사시 안전과 탈출로를 확보해 놓은 뒤 오르곤 했다. 우리는 며칠 휴식으로 온몸에 에너지 재충전은 확실히 해 두었다. 그러나 앞의 오버행에서 올려다보았던 등반 루트가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장비만 제대로 갖췄다면, 정확한 정보를 알고서 올랐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거라는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마침내 호기심을 참지 못한 우리는 엘 찰텐의 친구들로부터 장비를 빌렸다. 2월 중순, 충만한 활력과 체력, 좋은 날씨까지 더한 가운데 우리는 벽 앞에 다시 섰다. 목표는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등반 결과란 단지 이 목표를 위한 활동의 결과로 뒤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벽에는 다른 누구도 없어 마치 우리만의 세계에 온 듯하였다. 평화롭게 도전을 즐기자! 이는 산에서 경험의 질을 높이는 데에 점점 핵심적인 요인이 되어갔다.
첫날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난 시도와 마찬가지로 날씨는 따뜻했다. 아는 루트를 오르니 등반은 유연해졌고 중압감은 덜했다. 비박은 편했다. 이튿날은 실전이었다. 가파르게 솟은 벽을 천천히 올랐다. 뭐가 나올지 몰랐고 대신 뭐든지 나오는 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엔 오버행 크럭스(가장 어려운 곳)에 로프를 남겨두었다. 그러나 위로 모두 올라간 뒤에는 오버행 마지막 구간 위쪽으로 출구가 있겠다고 보고 로프를 거뒀다. 부담되는 결정이었지만 동시에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유일한 출구는 오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용기에는 운도 따르는 법. 앞서 상상했던 등반로는 오버행 지대를 돌파하는 유일한 크랙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저녁 ‘프티프랭스’ 루트와 만나는 작은 설원에서 비박을 하게 되어 우리는 몹시 피곤한 가운데도 행복했다. 셋째 날은 이 루트를 즐겁게 올라 콜을 거쳐 생텍쥐페리봉 정상에 섰다. 이탈리아 루트로 하강해 해 질 무렵 벽 아래로 내려왔다. 우리가 경험해 본 것 중 가장 가파른 고산등반 루트를 좋은 스타일로 올랐다. 최고의 순간이었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오른 루트를 ‘미르’(Mir)라고 명명했다. 등반거리 500m, 난이도 6c+ A3급, 70도 경사였다. 미르는 평화라는 뜻의 슬로베이아어다. 등반 중과 이후 우리가 겪은 내적·외적 상태를 잘 표현하는 단어다.
-블랙다이아몬드 앰배서더 루카 크라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