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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 핀들레이의 한국 여행

블랙다이아몬드의 뿌리는 광범위하게 퍼져나갑니다. 1980년도 중반 즈음에 만난 열정 가득한 한 한국 클라이머와의 인연이 지금의 끈끈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었죠. 한국은 끊임없이 클라이밍의 한계를 높이고 월드컵 우승이 일상이 되어버린 서채현 선수 같은 영재를 발굴해내며 세계에 큰 파도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블랙다이아몬드 선수 헤이즐 핀들레이와 콜렛 맥너니는 한국에 자리 잡은 블랙다이아몬드의 뿌리와 세계적 유산의 일부가 되고 있는 한국의 클라이밍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래 콜렛 선수가 만든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한국의 클라이밍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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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사진: 콜렛 맥너니

“네가 드디어 한국에 가는구나!” 동료인 헤이즐 핀들레이와 함께 한국을 여행할 거라는 말을 들은 러스 클룬이 신이 나서 소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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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진 씨를 만나면 안부 전해줘!” 그가 20년 전에 서울 외곽의 등반지에서 만난 클라이머를 제가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그냥 예의 있게 미소를 지은 후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그가 한국의 바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비롯해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그는 1985년 당시 한국의 트래드 클라이밍이 어땠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많은 루트들이 자유등반보다는 인공등반 위주였기 때문에 뉴요커 특유의 솔직함으로 무장한 러스는 서울의 로컬들에게 요세미티의  자유등반을 소개하게 되었고, 그렇게 정호진 씨를 비롯해 윤대표 씨 등 한국의 로컬 클라이머들의 도움으로 오르게 된 수많은 미등반 프로젝트는 대부분 러스에 의해 처음으로 자유등반된 루트들이었다고 합니다. 정 씨와 평생의 우정을 쌓은 것도 그때이고요. “
다시 2019년으로 돌아와서, 한국의 클라이밍은 지금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와 있으며 세계 정상급 클라이머를 여럿 배출했습니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 도착한 저와 헤이즐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고, 헤이즐은 몽골의 숲속에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며 여러 루트들을 초등하고 오는 턱이었죠. 이번 여행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헤이즐이 재차 강조하던 것이 바로 계획을 짜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국 문화에서는(미국에 비하면) 손님을 맞이하고 보살피는 일에 꽤나 진지하다고 말해주자 세세하고 딱딱한 계획은 여행을 망치는 것이라고 여기는 헤이즐의 모험정신이 그제서야 주춤하는듯했습니다. 아시아권 국가에서 1년 가까이 생활해본 저로써도 아직까지 문화적인 정확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에 계획 없이 흐름대로 나아가며 호스트의 역량에 기대는 것이 제일 낫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죠. 다행히도 헤이즐이 제 말을 따라주었고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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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곧바로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작은 어촌인 진안에 도착했습니다.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의 김우경 씨와 이수항 씨가 우리의 가이드였는데, 통역을 도와주고 한국의 유명한 등반지를 소개해 줬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한국의 음식 문화를 알려주었죠. 다음날 우리는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강물 옆에 수없이 놓인 바위를 오르며 손가락을 혹사시켰습니다. 볼더링을 하다가 날이 너무 덥다 싶으면 바로 시원한 강물로 뛰어들었죠. 저희가 경험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란 걸 알았기에 더 많은 바위들을 경험하고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이제는 트래드 클라이밍을 경험해볼 차례였습니다.

소문으로 들어 꿈만 꾸던 환상적인 화강암 절벽을 꿈꾸며, 우리는 다음 5일간 매일 새로운 봉우리들을 오르기로 계획했습니다. 도봉산, 인수봉, 북한산 그리고 설악산이 우리의 목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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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에서 우리가 묶고 있는 호텔에서부터 인수봉이나 선인봉 같은 자연 속의 등반지까지의 거리가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새것처럼 깨끗한 화강암 봉우리를 향해 산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작아져버린 도시를 볼 수 있었습니다. 탁 트인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전망은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를 바라보는 새의 눈을 얻은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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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 중독자답게 헤이즐은 도착하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매끈한 화강암 봉우리를 자른 곧은 크랙은 천국까지 뻗어있는 듯했죠. 오프위드부터 와이드 크랙, 핸드 및 핑거 재밍의 실크랙까지 없는 게 없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크랙 전문가는 아니지만 좋은 바위를 감별할 수 있는 눈은 있습니다. 선인봉과 인수봉의 화강암은 미국의 그 어떤 등반지에서 보았던 봉우리만큼이나 훌륭했습니다.
몇 개의 싱글 피치 라인을 등반했습니다. 코끼리 크랙(5.11c)도 그중 하나였죠.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 기간 동안 멀티 피치 등반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괴물 같은 피치들의 정상에 올라서면 더 많은 산봉우리들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등반할 수 있는 루트들이 이곳에 얼마나 더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풍경이었죠.
본래의 목적이 한국의 트래드 클라이밍을 깊게 맛보려 온 것이긴 하지만, 헤이즐에게 한국의 로컬 암장에서 클리닉을 몇 차례 진행해 줄 수 있겠냐는 문의가 있었고, 덕분에 차세대를 이끌 주역인 서채현 선수를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채현 선수는 14살에 14d/9a급 루트를 완등한 건 물론이고 우리가 그녀를 만나고 몇 달 후 곧바로 인생 두 번째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머쥔 명실상부 세계 정상급 클라이머입니다. 지난 수년간 한국이 클라이밍 대회를 휩쓸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비결을 궁금해했죠. 제가 목격한 것은 서채현 선수 같은 정상에서부터 뻗어 내려가는 열정 가득한 클라이머들의 끈끈한 커뮤니티였습니다. 한국 클라이머들은 어느 한 종목의 클라이밍이 다른 한 종목의 클라이밍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차별하지 않으며, 스스로와 스포츠의 한계를 시험하고 함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클라이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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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즈음에는 우경 씨와 수항 씨가 인수봉에서 유명한 루트인 “취나드 A”를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 직원분들과 함께 그룹으로 등반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가 빌레이 문제도 있고 그러면서도 좋은 사진이나 영상을 건질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 많은 인원이 같은 루트를 등반한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그것은 이내 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장의 모두가 전문 클라이머들이었고 심지어 한국의 프로 클라이머인 이명희 씨도 있었죠.
하산 후 우리는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의 직원분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셨던 클라이머는 저에게 서울의 등반 역사를 비롯해 지금은 금지된 산 아래 캠핑 지역에서 몇 주씩 캠핑하며 등반했던 옛날의 기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나이가 있는 클라이머와 대화를 하는데, 그가 미국인 친구인 러스 클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좋았던 추억을 얘기하며 서울의 자유등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우정 이야기였죠. 정호진,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의 사장인 그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열정이 넘치는 클라이머였습니다. 러스에게 안부를 물어줄 수 있냐고 묻는 그와 함께 셀카도 한 장 찍어 러스에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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