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즐 핀들레이 선수의 강한 정신력 키우기 파트 2 – 플로(흐름)
플로(흐름)란 무엇인가.
이번엔 우리가 흔하게 경험하면서도 깨우치기 힘들며 한 차원 높은 정신의 단계인 플로 상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플로를 연구하던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헤이즐 핀드레이 선수는 플로의 달인이라 불리는 카메론 노스워시를 찾아갔습니다.
강한 정신력 키우기 파트 2에서는 헤이즐 핀드레이 선수와 노스워시가 말하는 플로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등반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입니다.
친구인 제임스와 저는 새벽 2시쯤 엘캡의 한 베이스캠프에서 뮤어블래스트(뮤어월의 여러 루트 중 하나인 프리뮤어의 초반 12개 피치 구간)를 시도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죠.
지난 몇 주간 저는 등반할 때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신력이 등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저도 이 초조함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했을 뿐이죠.
반면 이미 헤드램프 착용까지 마친 제임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플로를 잃은 것 같아.”라고 말하자
“이 세상에 플로 같은 건 없어.”라며 제임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이 제가 플로를 가장 강하게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화강암 루트도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희한하게도 그날따라 등반지에 개구리가 많이 나와있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개구리를 밟지 않으려 조심했던 기억이 있네요.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등반하는 것 또한 집중력을 높여 주었습니다. 등반 이외의 세상이 시야에서 사라지니 등반에만 더욱 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는 예전에 한번 완등했던 루트이기 때문에 저에게 크럭스 구간의 팁을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5.13b 급 트래버스 피치에는 손/발 홀드가 거의 없었습니다.
발을 믿고 루프 쪽으로 몸을 일으켜 밀어 넣어야 하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제가 플래쉬하자 제임스는 놀라기도 하면서 살짝 질투심을 느끼는듯했습니다.
재등이 가능할지는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재등이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어려운 루트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제가 생각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정말 기계처럼 등반한 것이죠.
시간은 멈춘듯하면서도 빨리 흘러갔고, 쉬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수 잭슨이 말한 “운동선수의 플로”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날의 경험이 플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등반뿐 아니라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등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클라이머들의 정신력 트레이닝까지 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플로 전문가 카메론 노스워시를 만나게 되었죠.
그는 플로를 탐구하고 싶어 하는 저를 영상통화 너머로 코칭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마침내 직접 만나게 되었고 저와 제 친구 몇 명과 함께 볼더링 세션을 가졌습니다.
제 친구들한테 카메론씨의 직업과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설명하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사람들에게 플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트레이닝 시키면서 돈을 번다고? 플로가 뭐라고 했지?”
카메론씨는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 중이었고 20개가 넘는 스포츠 분야의 선수들에게 플로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9살짜리 소년부터 월드 챔피언까지 대상도 다양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플로를 찾는 것만으로 선수들이 큰 성과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프로젝트를 등반하거나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이었죠.
어떤 사람은 “난 그래도 대회 우승이나 실질적인 완등이 더 중요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플로를 얻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재미와 성취 두 가지 토끼를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카메론씨의 설명입니다.
아래 Q&A를 통해 카메론씨의 생각을 더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Q&A
헤이즐 : 플로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카메론 :
청소년기에 테니스 선수였는데, 테니스를 치다가 처음으로 플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공이 느려 보이고 정확한 타이밍에 강력한 스매시를 꽂을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죠.
제가 치고도 놀라는 그런 순간들이요.
안타깝게도 팔꿈치 부상 때문에 테니스를 관두어야 했습니다.
다른 것을 찾기 위해 페루로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플로를 목격했습니다.
높은 언덕 위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고 있었죠.
그때 길거리 연주자의 하모니카 소리가 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로열 알버트 홀 또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같은 노래들을 연주했는데 그의 음악에서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그는 양팔이 의수였습니다.
그만의 창의력에서 탄생한 플로는 정말 획기적이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 저만의 플로를 찾는 것은 테니스가 아니어도 가능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팔이 없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플로를 찾을 수 있다면, 저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우리의 최고 기량을 뽑아 낼 수 있게 만드는 이 상태가 과연 무엇일까.
플로에 매료당한 저는 그때부터 플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했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만든 플로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만의 플로를 찾는 것은 테니스가 아니어도 가능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팔이 없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플로를 찾을 수 있다면, 저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우리의 최고 기량을 뽑아 낼 수 있게 만드는 이 상태가 과연 무엇일까. 플로에 매료당한 저는 그때부터 플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했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만든 플로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헤이즐 : 플로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하셨는데, 스스로가 내린 플로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카메론 :
플로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지만, 제가 생각하는 플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능력이 과제에 부합하고, 육체와 정신이 하나 되며 집중력이 극에 달해 무아지경에 이르고 시간의 흐름조차 왜곡되어 느껴지는 최상의 정신 상태”
헤이즐 : 학술적인 정의는 그런데,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시를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카메론 :
이미 플로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우리 대다수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몰입” 또 어떤 이는 “흐름”이라고 말하죠. 무아지경이란 표현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방금 벌어진 일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울 때가 종종 있는데, 그것이 바로 플로를 경험한 것입니다.
가장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면, 누군가 갑자기 차 키를 던졌을 때 날아오는 키를 받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는 그 찰나, 생각하지 않고 몸을 먼저 움직이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플로인 것입니다. 본능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와, 내가 이걸 어떻게 잡았지?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움직였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헤이즐 선수 : 플로를 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카메론 :
플로 없이는 삶이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테니스를 칠 때 플로를 알았더라면”하는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플로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찾으려고 노력하자, 갑자기 플로를 더 자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 글쓰기 또는 서핑과 같은 다른 스포츠, 제 삶의 여러 분야에서 플로는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플로는 곧 저의 철학이 되었고, 코칭에도 접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플로에 집중하면 할수록 플로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을뿐더러, 동기가 증가하고 걱정과 불안은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헤이즐 : 플로 코칭의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카메론 :
최근 제가 포츠머스 대학교에서 4명의 엘리트 클라이머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클라이머들이 아주 기초적인 플로 트레이닝 및 플로 적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심리학 기술들에 대한 교육을 받게 했는데, 그러자 플로 성적은 28%, 집중력은 34%, 실제 등반 기량 또한 62%나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플로를 익히는 과정 속에서 선수들의 운동에 대한 흥미가 최고치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헤이즐 : 플로 적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많이 강조하시는데,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카메론 :
플로 코칭이 다른 코칭이나 스포츠 심리학과 다른 점은 플로를 익히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플로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목표가 되는 것이죠. 클라이밍으로 말하자면, 완등하는 것보다 플로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성과를 내는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목표에만 초점을 맞추면, “목표를 달성 못하면 어쩌지?”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게 되는데, 이때 오히려 집중력을 잃기 십상입니다. 일정 시간 내에 달성 해야 하거나 꼭 해내야만 하는 목표가 생길 때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몸과 마음을 쇠약하게 하고 머릿속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감각을 활성화시키고 순간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긴장이 풀리는 순간 두려움은 어느새 우리 몸을 지배합니다. 편하게 쉬어야 하는 순간에 쉬지 못하고, 전념해야 하는 순간에 의심의 씨앗을 키웁니다. 게다가 먼 완등의 순간에만 쏠린 신경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바로 다음 무브에 대한 집중력을 저하시킵니다. 30~50%의 정신이 완등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나머지 50%만이 다음 무브, 다음 홀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고의 기량을 내면서도 목표에 치중된 두려움을 피하고 싶다면, 플로를 익히는 것이 그 해답입니다. 플로의 순간에 우리는 잠재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플로는 우리가 우승이나 목표에 치우친 결과들보다 직면한 과제와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플로를 익히는 것이 모든 것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이즐 : 그렇다면 실제로 등반 전에 플로를 느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카메론 :
기본적으로 워밍업은 필수입니다. 플로에 집중하는 것 또한 중요하죠. 먼저 플로를 느꼈던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잡념은 없어지고 모든 것이 쉽게 느껴져서 이 전보다 깔끔한 동작으로 등반했던 경험 말이에요. 단순히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플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에 어떤 느낌이었고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와 같은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마치 행운의 부적처럼 그때를 떠올릴만한 작은 물건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등반 전에 그 물건을 보고 플로의 순간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이죠.
플로 상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느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느낌과 감정 그리고 감각의 반응을 떠올리는 것이죠. 그때의 시간과 공간을 강하게 느낌으로써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플로를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상태로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헤이즐 : 인터뷰 정말 감사합니다.
카메론이 쓴 책이나 플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The Flow Centre 를 방문하세요.
플로를 훈련한지 약 일 년 정도 지났는데 정말 놀라워요. 다른 정신력 트레이닝과 함께하면 효과가 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육체를 아무리 강하게 훈련하더라도 우리의 정신이 산만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 조차도 아직 갈 길이 멉니다. 8a 온사이트를 앞두고 플로에 집중하기 쉽진 않겠지요. 하지만 카메론씨 걱정 마세요. 플로 마스터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헤이즐 핀드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