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즐 핀들레이, 콜렛 맥너니 한국 방한 인터뷰
방한한 블랙다이아몬드 앰버서더 헤이즐 핀들레이, 콜렛 맥너니
“클라이밍이란 벽을 오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수봉, 선인봉, 설악산 등 국내 등반지 둘러보며 한국문화 체험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정종원 기자, 콜렛 맥너니
헤이즐 핀들레이는 유년시절부터 등반을 시작해 영국 주니어 챔 피언 타이틀을 6번이나 거머쥔 천부적인 클라이머로 16살에 선수 생활 은퇴 후 미국 요세미티, 스페인 올리아나, 캐나다 스쿼미시 등 세계 곳곳의 고난도 등반지를 여성초등으로 섭렵했다.
콜렛 매너니는 등반과 여행을 함께하며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는 프로 클라이 머다. National Geographic과 같은 아웃도어 기업과 함께 여러 모험적인 작품을 촬영했으며, ‘Never Not Collective’라는 여성 작가로만 구성된 제작팀을 창단했다.
내한 직후 헤이즐과 콜렛은 진안 운일암반일암 볼더링을 시작으로 북한산 인수봉 취나드 A, 도봉산 선인봉 남측 오버행, 설악산 장 군봉 기존길, 북한산 코끼리크랙 등 국내 유명 등반지를 찾아 한국 의 벽을 체험했다. 인수봉 취나드 A와 장군봉 기존길은 노스페이스 클라이밍 팀 소속 클라이머 이명희, 최석문씨가, 선인봉 남측오버 행은 거벽자유등반가 신성훈씨가, 북한산 코끼리크랙은 손정준 클 라이밍 연구소의 손정준 소장이 함께하는 등 국내 실력파 클라이머 들이 이들과 함께 줄을 묶었다.
헤이즐은 선인봉 남측오버행 온사이트 초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내 등반일정을 온사이트로 올랐으며, 콜렛은 헤이즐의 한국등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외에도 두 앰버서더는 국내 클라이 머들을 대상으로 멘탈 클리닉 강연을 진행하는 등 그녀들의 내한을 손꼽아 기다린 한국의 팬들을 만나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남측 오버행(5.12a)을 온사이트로 등반한 헤이즐
사진: 콜렛 맥너니
헤이즐: 예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남북관계상황도 그렇고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어요. 한국을 직접 방문해 문 화, 사람, 음식, 등반지 등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죠. 그래서 블랙다 이아몬드의 한국 투어 제안에 즉시 하겠다고 했습니다. 콜렛 저는 이번이 두 번째 한국방문이에요. 한국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죠. 헤이즐이 한국에서 등반하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함께 왔습니다. 저와 헤이즐은 같은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클라이머로 활 동하며 자연스레 알게 됐어요. 오래된 인연이죠.
Q,직접 경험해본 한국에서의 클라이밍은 어땠나요?
헤이즐: 우선 바위 상태가 등반하기에 정말 좋아요. 바위의 모습도 멋 지고요. 무엇보다 도시에서 등반지가 가까운 게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유명한 등반지들도 이런 지리적 장점이 있는 곳은 거의 없어요. 한국은 외국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정은 한국의 다양한 등반지를 다니며 가볍게 여행하는 느낌 이었어요. 오늘 등반한 코끼리크랙은 난이도가 있긴 했지만, 개인 적으로 그리 어려운 등반은 아니었죠. 전반적으로 한국의 등반문화 를 한 번 훑는 느낌이었는데, 다음에는 몇 개의 어려운 루트를 정해 서 좀 더 등반에만 집중해보고 싶어요. 벌써 한국에 꼭 다시 와야겠 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한국만의 차별화되는 등반환경이 있었나요?
헤이즐: 한국의 바위는 화강암이 많아요. 제가 자주 등반하는 미국의 요세미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바위는 입자들이 많이 살아있는 편 이에요. 한 루트에서 등반을 많이 하면 바위가 매끄러워지기도 하는 데 아직 그만큼 닳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특히 이번에 제가 등반한 코끼리크랙, 남측오버행 등은 대중적인 등반루트는 아니라 서 마모가 덜 된 것 같아요. 등반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콜렛: 한국은 암벽등반에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 내암장에서 클라이머들이 같이 볼더링을 즐기는 문화와 커뮤니티 가 잘 돼 있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지난 주말에 인천 디스커버리 암 장에서 진행했던 강연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한 데 모이는 자리였는 데, 클라이머들이 서로 어울리고 자연스레 소통하는 문화가 인상적 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진안군 운일암 반일암에서
사진: 콜렛 맥너니
헤이즐: 저는 새로운 등반지에서 현지 클라이머들을 만나 같이 등반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들에게서 그 지역의 정보나 문화적인 것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죠. 마찬가지로 이번 일정 중에도 여러 한국인 클라이머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인 클라이머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실력있는 클라이머들이 많다고 느꼈어요. 생각해보니 실제로 외국 등반지에서 한국인 클라이머들을 종종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많은 한국의 클라이머들이 세계 각지의 등반지를 찾아 등반을 위한 여행 을 하고 있어요. 한국 클라이머들은 강하고 멋져요!
Q,이번 일정과 같은 투어를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하나요?
헤이즐: 그렇습니다. 블랙다이아몬드와 함께 이런 투어 일정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 나라에 방문해 등반하거나 강연을 진행하고 사진과 영상을 남기죠. 정말 많은 여행을 다녀요. 저는 여행을 통해 다른 장소,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등 많은 것을 직접 느끼고 많은 것 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굉장히 흥미롭고, 때때로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줘요.
코끼리 크랙을 오르는 헤이즐
사진: 콜렛 맥너니
헤이즐: 대부분은 정말 좋습니다. 여행과 클라이밍은 제가 가장 좋아 하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건 정말 행운 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어려운 점을 말하자면 때때로 너무 많은 여 행은 피로를 쌓이게 해요.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 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게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네요. 하하. 가끔은 소셜미디어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프로 클라이머로 서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의 일상과 도전을 타인과 공유 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좋은 점만 있다면 그건 직업 이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의 적당한 어려움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콜렛은 프로 클라이머이자 아웃도어 전문 사진작가라고 들었 습니다. 어쩌다 암벽등반과 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순간’을 기록 하게 되었나요?
콜렛: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는 건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요. 그래 서인지 등반을 시작하고 여러 등반지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레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죠. 처음 등반을 시작할 당시에 교제 했던 전 남자친구가 프로 클라이머였는데, 그를 찍기 위해 로프를 고정하고 위에 매달려서 그의 모습을 찍어봤어요. 그 일을 계기로 등반사진을 시작하게 됐죠. 이후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관련 업무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취미가 직업이 되었습 니다. 제게 클라이밍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정말 커요. 그런데 저는 클라 이밍만 하면 어떤 공허함 같은 게 생겨요. 그런 마음은 사진으로 채 워집니다. 반대로 사진만 찍을 때는 클라이밍에 대한 갈증이 생기 더라고요. 하하. 클라이밍과 사진의 균형을 맞추며 지내는 게 제가 가장 좋아하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에요.
Q,투어일정 같은 공식행사 외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개인 프로젝 트 등반이 있는지, 또는 계획하고 있는 다음 등반지가 있는지 궁 금합니다.
헤이즐 우선 이번 한국 일정이 끝나면 영국으로 돌아가 3개월 정도 쉴 계획이에요. 재충전이 끝나면 9월에 미국 요세미티의 매직라인 (Magic Line 5.14b)을 프로젝트 등반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매직 라인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크랙 등반이에요. 매직라인 초등은 1996년 12월 6일 론 카욱(Ron Kauk)의 핑크포인 트(Pink Point, 기어를 미리 설치해 놓은 상태에서 완등)등반이었 어요. 딱 20년 뒤인 2016년 12월에 초등자인 론 카욱의 아들 로니 카욱 (Lonnie Kauk)이 레드포인트(Red Point, 장비를 직접 설치하며 오 르며 완등)등반으로 매직라인을 두 번째로 올랐죠. 지금까지 매직 라인 완등자는 카욱 부자(父子)가 유일해요. 여성 완등자는 아직 없고 요. 그만큼 고난도 루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막연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이렇게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말해버렸으니 꼭 가서 등반해야겠어요.
한국의 클라이머들과 설악산 장군봉 정상에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종능, 이수항, 이명희, 콜렛 맥너니, 헤이즐 핀들레이, 김우경
사진: 최석문
헤이즐: 저는 ‘멘탈 트레이닝-등반의 접근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 려줬어요. 보통 클라이머들이 체력적·신체적 발전에는 굉장히 집 중하는 데 반해 정신적인 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요. 가장 중 요한 건 내가 어떤 이유로 등반하는지, 나의 정신적인 접근은 등반 에서 어떤 부분인지 많이 생각하고 관심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한, 어떤 것이 자신의 등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자기를 괴롭히는지,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들에 집중 하는 시간을 갖 는 게 필요해요.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 하게 되고 정신을 단련시킬 수 있어요.
콜렛: 저는 ‘여성클라이머를 위한 클리닉’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클라 이밍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자신의 장점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보통은 여성들이 밸런스나 유연성이 좋 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힘이 좋거나 점프를 잘 할 수도 있거든 요. 각자 가진 강점이 다르므로 한 가지 정답에 맞추지 말라고 말하 고 싶어요. 밖에서 이유를 찾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말이에 요.‘나는 키가 작은데, 힘이 부족한데, 팔이 얇은데 ….’ 같은 약한 생각들은 떨쳐버리고, 나만의 장점을 발견해서 등반에 집중하는 게 여성 클라이머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헤이즐: 클라이밍은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부터 클라이밍을 했기 때문에 클라이밍을 통해 배운 것들이 매우 많아요. 또한 저는 벽을 오르는 자체만을 클라이밍이라고 단정 짓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등반에 집중하고 어떻게 등반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 등반지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모두 클라이밍이라 생각합니다.
콜렛: 저도 헤이즐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밍은 제게 큰 부분입니다. 저 는 직업으로서 접근하는 클라이밍도 있지만. 클라이밍을 통해 사 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게 아주 중요하고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해 요. 제게는 클라이밍이 그런 의미가 있죠. 저는 관계지향적인 사람 이거든요. (웃음)
Q,<사람과 산>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헤이즐: 한국은 엄청난 행운을 가진 나라예요. 도심에 위치한 인수봉 등 도시근교의 등반지의 지리적 장점이 특히 그렇죠. 한국에 있는 일정 동안 정말 즐거웠고. 꼭 다시 방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 든지 제가 사는 웨일즈에 방문하면 같이 놀 수 있을 거예요. 커몬!
콜렛: 어딜 가나 환영해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고 고마움을 많이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의 클라이머들과 지내며 좋은 등반문화를 배 웠고, 한국의 등반커뮤니티를 경험한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 다. 땡큐, 코리아!
인수봉 취나드 A 등반
영상: 강레아
블랙다이아몬드 애슬릿 팀.
– (여성 초등)Once Upon a Time in the South West(E9 6c/5.13b R/X), 영국 사우스 웨일즈 데번.
– (여성 초등)The PreMuir (5.13+/8b),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엘 캐피탄.
– (초등) Tainted Love (5.13d/8b R trad), 캐나다 스쿼미시.
– Mind Control (5.14b/8c), 스페인 올리아나.
– (여성 초등)Findlay-Geldard (ED/E5/Scottish VI),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 Aiguille de Saussure.
– (여성 초등)Air Sweden(5.13 R trad), 미국 유타 인디언크릭.
– (자유 등반)Salathe Wall (5.13b/8a),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엘 캐피탄.
– (여성 초등)Golden Gate (5.13a/7c+),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엘 캐피탄
블랙다이아몬드 애슬릿 팀.
– China Crisis(5.14a/8b+), 스페인 올리아나.
– Maroncita(5.13d/8b), 스페인 올리아나.
– Picos Pardos(5.13d/8b), 스페인 올리아나.
– Serpentine(5.13b/8a), 호주 그램피언스 타이판 월.
– Flash of Red Bull(5.13a/7c+), 스페인 올리아나.
– 난이도 5.13급 100개 루트 이상 등반.
– 첫 영화, “Girls Trip Brazil”.
–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 촬영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