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FKT: 한계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었다. 8월 23일부터 지독하고 고된 시간을 건너고 건너서 9월 5일까지. 13일 12시간 28분 동안 우리는 스스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기록이라는 게 중요한걸까. 우리가 도전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모든걸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보다는 어려움에 부딪혀 그것들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지 않을까? 경험이라는 건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고, 기록이라는 건 금방 잊혀질뿐이다.
글: 박준섭, 고민철 사진: 조덕래
우리는 조금 이상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단순하다. 그냥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힘든 순간을 즐기는 이상한 경향이 있다. 이상한 경향이라기보단 나의 성향에 잘 맞는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각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켜내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산속을 달리거나 걸으면서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과 잊어버린 모습들을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누군가 나를 향해 내뱉은 말들을 포함하여 많은 시선들은 가끔 나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본래의 모습들을 스스로 나도 모르게 지워버리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산속을 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건 산에서 달렸을 때 나답게 살아도 다르게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달린다는 건 나다운 모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백두대간과 FKT는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다. 설명하자면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로 북쪽 백두산에서 동쪽 해안선을 따라서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가 1625Km 이고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남한 구간만 해도 696km 거리를 가지고 있다. FKT(Fastest Known Time)는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우는 트레일에서 생긴 문화 중에 하나이다. 합쳐서 우리는 백두대간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기록을 세우는 도전을 해볼려고 한다. 왜 우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는 걸까. 목적은 단순히 백두대간의 최단 기록을 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백두대간 길을 살려서 해외 트레일처럼 우리 모두가 백두대간을 함께 살리고 이번 세대가 아니더라도 다음 세대가 충분히 장거리 트레일을 즐기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장거리 트레일 자체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산길을 걷는 것을 좋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장거리 트레일을 즐길 수 없는 걸까? 개인적인 욕심과 경쟁력에만 몰두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외롭고 힘들어 보인다. 경쟁을 즐긴다면 작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큰 것을 이룰 순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하고 공감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움 주는 문화가 아닐까.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거리 트레일을 걸으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꿈꾸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알게 되며,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주변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게 된다. 서로를 위해 공감하고 소통하고 희생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알게 되며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대 자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이면서 잘나고 못난 것 없이 서로 평등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백두대간FKT라는 도전을 통해서 백두대간을 널리 알리고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활성화시키고 싶다. 조건 없는 도움과 사랑속에서 남녀노소 구분없이 백두대간을 걸으며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싶다. 이 바램이 이루어진다면 모두가 함께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단순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우리는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이 도전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제주도 애월에서 귤 농사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고민철. 서울에서 개발자 일을 하고 있는 박준섭. 아웃도어 사진 촬영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조덕래. 아웃도어 영상 촬영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박주필. 호카 코리아의 캠핑카 운전과 모든 서포트를 도와주는 조원희. 우리의 팀은 다섯 명이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호카코리아의 도움을 받아 호화롭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고 백두대간을 지리산을 시작으로 가볍지만 보이지 않은 무거운 것들을 등에 지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 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엄청난 도전을 하고 있다니. 어쨌든 우리는 가벼워 보이지만 많은 것들을 등에 지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공기는 맑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는 마음으로 딱딱한 돌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백두대간은 매우 어려워서 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북쪽을 향하였고 우리가 내딛는 발자국이 뒤따라오는 누군가에게 올바른 방향과 도움이 되길 바라며 백두대간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호기만 넘쳐나는 우리들은 백두대간의 일부만 걸어보았고 진정한 백두대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무지했고 무식했다. 젊은 날에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루에 평균 18시간 걸었고 수면시간 평균 5시간 잠들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는 걸 설명할 수 있었다. 애초에 함께 세웠던 계획은 의미가 없었다. 산에서 달리는 걸 좋아하는 우리들은 감히 이 길을 달릴 수도 없었고, 길마다 펼쳐져 있는 웅성한 나뭇가지, 풀, 거미줄 같은 것들은 우리의 발목을 수없이 붙잡아버렸었다. 그래서 힘들게 생각했던 계획들은 와르르 공든 탑이 무너지듯 먼지처럼 없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운이 좋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주는 조덕래는 엉망이 되어버린 계획들을 잠을 줄여가며 보완하고 두 번 세 번 체크하며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당장 작전과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지도 보는 것에 능통했고 모든 변수들을 계산해가며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만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조금이라도 산에서 늦게 내려오는 날엔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크게 걱정하였고 캠핑카로 찾아온 우리를 크게 반겨주었다.
처음부터 박준섭은 고민철보다 비교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시작부터 발목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고 감기를 가지고 있었다.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우리를 정말로 힘들게 만든 건 쏟아지는 졸음이었다. 어떤 날엔 예상치 못하게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그날 밤은 더 길어졌고 더 걸어야만 했었다. 자연스럽게 감겨지는 눈꺼풀은 우리 몸을 힘 빠지게 만들었고 내리막길에선 정신을 놓아버려 아주 쉽게 미끄러져버리기도 했다. 아마도 이 순간이 가장 힘들었던 것만 같다. 잠은 쏟아져서 다리는 풀리는데 어떻게든 정신 번쩍 차리고 가야 되는 일. 어쩔 수 없는 해결책은 아주 시끄러운 노래를 듣는 것. 들리지만 들리지도 않은 노래에 의지한 채 잃어버린 정신을 집중하며 길을 걸었고 항상 걱정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만 생각하며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새벽 다섯시. 새벽 두시. 새벽 한시. 겹겹이 쌓이면서 온몸의 리듬은 깨졌고 회복도 느려지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무조건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간다’ 그 생각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애타게 기다려주는 팀원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날엔 박준섭이 음식을 먹다가 이미 약해져있던 이까지 부러져버리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는 그날 완전히 힘들어 보였다.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다. 박준섭은 고민철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는 늦어져도 괜찮다고 기다려준다고 편안한 마음으로 말하였다. 너의 이 상태를 한번 체크해보고 가자고. 너무나 감사했고 내 몸 상태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힘들었지만 다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안 좋은 상황들은 재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만 했다. 앞으로의 상황만 생각할 것. 긍정적인 마음만 가질 것. 과거는 빠르게 잃어버리고 미래는 한치도 생각하지 말 것. 눈앞의 상황만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우선으로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항상 함께 했다.
도전하고 있는 상황에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기에 몰랐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팀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언제 너희들을 도와주러 가겠다 이때쯤엔 어디에 있을 예정인가. 여기 근처에 온다면 연락을 하여라” 우리의 도전 속에 함께 호흡하고 있었고 그들의 시간을 기꺼이 우리를 위해서 공유해주었다. 다섯 명이었지만 수십 명이 한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의 몸은 모든 걸 적응해나가며 힘겹게 싸워가고 있었다.
중간지점에 다 와갈 때쯤인가, 박준섭은 왼쪽 발목이 점점 아파지기 시작하였고 진통제 한 알 한 알 집어삼키며 오늘 밤만 이겨내자만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도전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누군가 중간에 낙오된다면 어떻게 할 것 인가 고민을 했었다. 우리에게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이야기했지만 속리산을 지나고 우려했던 상황이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박준섭과 고민철은 제발 이 상황만큼은 오질 않길 분명히 바라고 바랬을 것이다. 반드시 함께 우리의 종착점인 진부령에 다가서자고. 그곳에서 함께 승리의 함성을 지르자고. 진부령에 곧게 서있는 큰 비석에 기쁨의 키스를 해보자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려했던 상황은 찾아왔고 박준섭은 고민철에게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뿐이였다. 또한 함께 믿고 달려준 팀원들에게도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였다. 박준섭은 혼자서 거울을 지긋이 쳐보았다. 몰골은 처참했고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하도록 숨고만 싶었다. 허무한 숨소리와 안타까운 표정과 차가워진 말들은 우리들의 공간들을 지배했다. 이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앞으로 나아갈 건지 그만할 건지. 박준섭은 휴식시간을 더욱 길게 가졌고 멀리 살고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무릎 보호대를 찼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산길을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했다. 박준섭은 고민철의 에너지를 조금씩 빼앗아가고 있었고 결국엔 도전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엔 공허함만 남았다. 그날 하늘은 힘없이 쓰러져 버리기엔 너무나 좋은 날씨였고 앞으로 나아가야 될 이유조차 잃어버린듯했다. 함께 그만둘 것인가. 혼자서라도 나아갈 것인가. 고민철에겐 매우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보다 더욱더 험난했고 비법정탐방로만이 즐비했다. 그리고, 밤늦게 혼자서 위험한 백두대간 길을 걷는다는 건 무서웠고 두려웠을 것이다. 함께 있던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에 고민철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묵묵히 혼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안타까워 보였다. 그저 다치지만 않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영상을 담는 박주필은 이전에 산도 누구보다 잘 오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앞서 그가 없었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망가졌을지도 모를 만큼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우선 우리 모두의 음식을 요리해서 준비해주기도 했다. 팀원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요리해주는 음식들을 먹었었고 거리가 길어지는 구간엔 잠을 줄여가며 선수들을 위하여 주먹밥을 만들어주었다. 그 주먹밥이 없었다면 우리는 질안 좋은 음식들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또 박준섭이 포기했던 순간부터 마지막 끝날 때까지 밤에는 고민철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용기를 계속 가진 채 앞을 나아가도록 페이서 역할을 매일 해주었다. 낮엔 촬영하랴, 요리하랴 밤엔 힘들게 페이서 역할을 하랴. 무지막지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는 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다와갈 때쯤엔 쉴 틈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는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비가 오게 되면 움직임은 느려지고 체온이 내려갈 수 밖에 없고 힘든 오르막길을 끝낸 정상에선 맘 편히 쉴 수도 없다. 쉬어버리게 되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저체온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몸은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이 순간을 이겨내라고. 여기서 죽을 수 없다고. 온몸에 흩어져 있는 숨겨져 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려 준다. 얼굴은 심하게 수척해지고 면역력은 점점 떨어지고 말은 점점 사라지고 본능적인 역할에만 집중하게 되어버린다.
그냥 많이 먹게 되고 자게 되고. 어떻게든 이 힘든 상황을 빨리 끝내버리도록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이제는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게 된다. 아니. 그냥 지배하게 된다.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어진다. 외롭게 산속에서 이 단어만 생각하다가도 산 밑으로 내려와 도와주는 팀원들 찾아오는 사람들만 보면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그들의 눈빛과 손짓에 떠밀려 또 억지로 산속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이 수없이 반복된다.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고 어느새 우리들의 종착점이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서로의 호흡에 발자국 소리에만 집중하며 마지막 진부령 비석만 생각하며 달려나갔다. 평소에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고민철은 말이 완전히 없어졌다. 발목이 아파왔고 말없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빨리 끝을 내자 마음을 잡다가도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입안으로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서 멈출 수 없었다. 박준섭은 무릎 부상을 이겨내고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다시 함께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산속으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옆에 있어 주는 것. 말없이 응원해주는 것. 마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이를 위해서 베이스캠프에서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팀원이 다치지 않도록. 반드시 그곳을 자랑스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눈만 뜬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샴페인을 한손에 꽉 쥐고 고요함 속에 기다리고 있었다.
강원도 비 오는 어느 날 밤. 말도 안 되지만 ‘지리에서 백두까지’ 불리는 위대한 여정이 비로소 끝을 맺었다. 고민철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 내고 이겨내었다. 목 놓아 울 것만 같았던 고민철은 울지 않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소리 질렀고 그는 조용히 진부령 비석에 키스했다. 위대한 여정이었다. 기록이 빠르든 늦든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하얀 백지에 진한 그림을 그려내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었지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지리산 중산리에서 출발했고, 강원도 진부령에 도착했다. 이것이었다. 누군가 몰랐던 백두대간을 알았다면, 우리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백두대간을 도전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이고 행복일 것이다. 박준섭은 부끄러웠다. 그의 손을 잡고 진부령 비석에 서있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했다. 아쉬웠고 너무나 아쉬웠다. 다시 도전할 거라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단련해서 혼자서 다시 도전해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함께 비석에서 다짐했던 박준섭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백두대간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도록. 누구나 당연하게 백두대간을 밟을 수 있도록. 백두대간을 세상 밖으로 알려지도록. 누구나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호하고 아끼도록. 그날을 기약하며 우리 모두 백두대간을 저 멀리 떠나보내었다. 안녕 백두대간.
백두대간 FKT
거리: 총 689km (실 주행 거리 771km)
누적고도: +50,557m
기간: 8월 23일~9월5일 /13일 12시간 28분
기록 (오차범위 있을 수 있음)
1일차 금 46km 3,600m
2일차 토 43km 3,200m
3일차 일 55km 4,546m
4일차 월 45km 3,766m
5일차 화 31km 2,000m
6일차 수 49km 3,200m
7일차 목 30km 2,490m
8일차 금 60km 4,200m
9일차 토 71km 5,093m
10일차 일 52km 3,700m
11일차 월 72km 5,422m
12일차 화 68km 4,330m
13일차 수 80km 2,930m
14일차 목 69km 2,1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