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AN ALPINIST? – 알피니스트에 관하여
카라코룸 원정에서, 랍 던컨이 알피니스트의 의미를 숙고해봤습니다.
Photograph: Jesse Mease
길 가에 흩어진 낙타의 배설물을 도망치듯 피하고 예고 없이 불어오는 먼지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을 감싸며 수량이 불어난 ‘샥스감’ 강둑을 따라 슬로베니아의 팀 캠프까지 걸어갔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고약한 냄새가 났고 긴 여행으로 모두들 몹시 지쳐있었지만,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미등봉인 ‘아길 카라코람’에 도착하게 되어 기뻤고 이 낯선 땅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텐트 밖에 알레스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굉장히 터프한 슬로베니아인으로 자국의 ‘줄리안 알프스’에서 몇 개의 초등을 하고 세계적인 원정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캔 오프너가 있는지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파란 원정용 배럴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알레스가 스위스 군용 나이프를 내밀었습니다. “있긴 한데, 쓰는 법을 알아야 해요”라고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습니다.
그의 도구를 받아 재빠르게 연어 캔 하나를 열었습니다. 싸구려 중국식 컵라면에 넣으려고 말이죠. 그 모습을 본 알레스가 웃으며 “아, 제가 보기엔 당신은 알피니스트군요! 스포츠 클라이머가 아니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활짝 웃으며 그 질문을 피하듯이 “어,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팀은 9명의 다국적 클라이머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클라이머인 브루스 노먼드가 이곳을 탐사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의 결의에 의해 저를 포함한 다른 클라이머들이 모였습니다.
이 산맥에는 기가 막히게 멋진 6천 미터 대의 처녀봉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3일 간 트레킹하여 베이스캠프에 이르렀습니다. 제 파트너인 제시 미즈와 저는 지난 수년 간 화끈한 성격의 브루스 노먼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왔고, 이제 이 베테랑 알피니스트가 이끄는 팀에서 첫 번째 알파인 원정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알레스가 저를 알피니스트라고 부를 때, 마음 속으로 갈등을 느꼈습니다. 알피니스트가 되고 싶긴 했으나,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진짜 알피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텐트를 세우기 위해 플랫폼을 깎아낸 적도 없고, 고소 등반을 한 적도 없고, 고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없습니다. 알파인의 세계에서 몇 번 더 큰 경험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스스로를 진짜 알피니스트로 여길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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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스와의 첫 만남이 있은 지 2 주일 후, 빙하 위에 세운 작은 텐트 안에서 저는 팬티만 걸친 채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2 주일 사이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덥고 체력이 바닥 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피크 6814의 초등을 끝냈기 때문이죠.
약 5700m부터 그 정상까지는 심설 속으로 길을 내며 포스트홀링(postholingm, 러셀)을 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쿤룬‘ 산맥이 동서로 우리 앞에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 있었고, ’샥스감‘ 강이 파키스탄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작은 봉우리들이 서쪽에 있는 K2와 가셔브룸 1봉과 2봉의 모습을 가렸고, 그 봉우리들의 남쪽에는 가셔브룸 3봉과 4봉이 멀리서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정남향으로 돌아서 샥스감 강의 상류 쪽을 올려다보면, ’사서 캉그리‘ (Saser Kangri) 부근의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Photograph: Rob Duncan
그리고 동남쪽에는 이번 원정의 주 목표인 ‘더빈 캉그리 1봉’의 웅장한 북벽이 솟아있었습니다. 그 벽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해질녘의 오렌지 빛 햇살이 희박한 공기 속을 지나 우리에게 오면서 미지의 거대한 신기루처럼 깜박거렸습니다. 작은 눈사태들로 인해 그 거대한 봉우리의 옆면이 파여 있었습니다. 제시와 전 이제껏 등정된 적이 없는 이 웅장한 6824m의 미등봉 사진을 7 개월 간 늘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무나도 웅대한 산 속에 서있으니, 가능성이 무한한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때 알았습니다. 이것이 지금껏 내가 원하던 등반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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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4 봉의 등정 성공 후 5일째 되는 날, 우리는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고소 캠프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건조식품을 먹고 ‘더빈 캉그리 1봉’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위험한 지형을 살피고 텐트 칠 만한 바위를 탐색했습니다.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벗어난 얼음 지형이 안전할 것 같다고 모두 동의했습니다.
동틀 때 우리의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메탈리카’의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고 익숙한 인스턴트 커피 냄새가 캠프 전체에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그 거대한 북벽 베이스까지의 한 시간 거리의 하이킹을 시작했고, 베이스에서 장비를 착용한 뒤 스노우 슈즈를 안전한 곳에 감춰 두면서부터 차츰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가파른 설벽의 하단 에이프런(빙하 앞에 모래와 자갈이 침전하여 덮은 지역)과 경사 얼음 구간을 솔로 등반하기 시작하고 베르그쉬룬트를 건너가면서, 불안감이 차츰 없어지고 환상적인 일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트래버스하여 베르그쉬룬트 바로 위에 이른 후, 최초로 테크니컬 등반을 요하는 얼음 피치에 도착했습니다. 선등하기 위해 매듭을 묶자,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졌습니다. 빌레이 앵커 위로 키만한 높이까지 올라갈 때마다, 두려움과 환상이 사라지면서 곧 심신의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의식 속에 오직 존재하는 건 다음 번 아이스 툴 스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정심은 얼마 못 갔고, 머리 위 불과 몇 미터를 휙 지나가는 바위와 얼음 소리를 듣자 저의 무아지경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황급히 확보물 설치 지점을 찾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했습니다.
Photograph: Rob Duncan
급경사 설벽과 잘 부서지는 얼음 구간 80 피트를 오른 후, 약간 오버행을 이루며 튀어나온 얼음 밑의 스탠스에 도착했습니다. 겨우 체중만 견디는 스크류 2개를 얼른 박은 후, 첫 번째 크럭스까지 등반했습니다. 물이 제 눈으로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그 굳어진 눈 밑에서 양호한 얼음을 찾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밑에 있는 석회암으로 갔습니다.
아이스 스크류 하나에 의지하여 제시를 위로 데려 왔는데, 제시도 얼음과 바위의 형편없는 질을 보고 똑 같이 기겁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브루스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는데, 그는 앵커 스크류에 얼음을 꼭꼭 다져 넣어 스크류가 녹아 얼음에서 빠져 나오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굉장히 더웠고 무언가 커다란 얼음이 위에서 떨어지기 전에 빨리 그 벽을 떠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약간의 의논을 거친 뒤 이런 상태에서는 이 라인이 등반 불가임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제 맘이 울적했습니다. 브루스가 스노우 슈즈를 신고 빙하 위로 올라가 이 봉우리의 북동 능선 위에 대안이 될만한 루트가 있는지 보기로 했고, 제시와 저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구글 어스’를 통해 존재가 확인된 듯 했으나 어프로치조차 할 수 없는, 봉우리들을 등반하려고 애쓰며 보냈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허리까지 오는 물살을 헤치고 건너기 위해 수십 번이나 동계 빙벽 부츠를 벗고 샌들을 신어야 했는데, 적어도 빠른 회복 능력만은 강화되었습니다. “롭, 이번이 자네의 첫 원정인데 미안하네. 이제까지 겪은 것 중 단연 최악이야”이라고 원정을 경험이 많은 브루스가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원정을 ‘익스트림 계곡 탐사’ 원정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자고 농담했습니다.
Photograph: Jesse Mease
날마다 시냇물 수위가 높아짐이 눈에 뜨였고, 저장한 식량이 줄어들고 곧 심한 피로를 느끼게 되어, 아무 결실도 없는 원정을 받아들여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틀 동안 이미 우리가 횡단했던 지형 위로 꾸준히 갔습니다. 알레스가 텐트 친 곳이 눈에 뜨였는데, 커다란 그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며 멀리서 우리를 맞이 하는 듯 했습니다. 그를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 반가웠고, 마지막으로 제 샌들을 신었습니다. 슬로베니아 친구들과 더불어 즐겁게 이야기하고 맛있는 간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야영장에 들어서자, 알레스라고 생각했던 형체가 쾌활한 그 알피스트가 아니라 음식을 저장하는 둥근 배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8일 동안 알레스와 피터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시, 브루스와 제가 얼른 다시 팀이 되어 필사적으로 그 친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하여 또 다시 급류 속으로 급히 뛰어 들면서, 어떤 등반 원정에서도 일찍이 생기지 않았던 절박함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알레스와 하키 게임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둘 다 하키 링크의 난간에 기대고 있었고, 정신이 든 제가 “알레스, 당신 죽은 거야?”라고 물어봤습니다. 그의 웃고 있던 얼굴이 갑자기 무표정하게 변했고,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레스는 저에게서 얼굴을 돌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알레스와 피터가 목적지로 정하고 출발한 그 빙하까지 이르는 길을 우리가 계속 찾을 때,
협곡에 점점 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굉장한 급류 속으로 반도 못 갔는데 제 트레킹 폴이 덜덜 떨리고 엄청난 물살이 저를 뒤로 밀어냈습니다. 결국, 여러 날 동안 수색한 후, 브루스가 원정 대장으로서 지상 수색을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의 강인함을 잘 알고는 있으나, 저는 굉장히 낙담했습니다. 제 배낭 위에 앉아 울었고요. 슬로베니아에 있는 여섯 명의 아이는 아버지 없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 산맥에서 내 인생의 한 달을 보냈건만, 단 한 피치도 산을 올라가지 못했고, 아직 제대로 알기도 전에 두 명의 친구까지 잃었습니다. 알파인 등반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죽음을 무릅쓸 만한 뭔가가 있는 걸까?
문명 세계로 돌아온 뒤에도 아직 답을 찾진 못했으나, 제가 다시 카라코룸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흔적도 없던 그 험준한 산 속에서 저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을 마음 속으로 느꼈습니다.
산에서의 몇 주간 저의 몸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 곳에서의 추억이나 알레스와 피터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고 심장이 뛰어왔습니다. 아직도 탐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한없이 넓은 산맥을 저는 언젠가 다시 걷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알레스 홀크와 피터 메즈나를 추모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Rob Duncan
원문보기: http://eu.blackdiamondequipment.com/en/experience-story?cid=rob-duncan-what-is-an-alpinist
Photograph: Rob Dun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