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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챔피언 팍시 우소비아와 아담 온드라

2009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팍시 우소비아가(PATXI USOBIAGA)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클라이머였습니다  그는 대회 우승을 통해 월드 챔피언이라는 자리에올랐고 클라이밍의 전설로서  이름을 떨쳤습니다그러나 그의 뒤에는 아담 온드라라는 어린 체코 출신 선수가 2등을 지키고 있었죠팍시 그날 자신의 뒤에  있는 어린체코 출신 선수의 눈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했고 그가 바로 클라이밍의 미래가  것이라고 직감합니다팍시 여전히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올림픽을 위해 맹훈련중이지만동시에 아담 온드라 코치이자 트레이너로써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인스브루크에서 열리는 2018 월드 챔피언십을 향한 팍시 여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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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부모님 덕분이죠. 개방적이셨던 저희 부모님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항상 산과 가까이 하기를 바라셨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개의치 않으셨죠. 신기하게도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 다 클라이머가 아니셨습니다. 빌레이 보는 법도 제 스스로 터득했고 오히려 제가 아버지에게 알려드렸죠. 두 분의 인내심을 보고 자란 저는 2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등반을 사랑하고 있으며 항상 배움을 청하는 자세로 끊임없는 도전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은 끝없는 가르침을 주는 선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미소 짓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10살 때는 근처에 암장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하루의 행복이었습니다. 암벽화를 신고 등반 잡지에서 본 저의 롤모델들을 따라 하는 것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같은 기사를 100번도 넘게 반복해서 읽으며 그 루트(퐁텐블로 8a)가 실제로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보곤 했죠. 평생 저는 이렇게 어려운 루트를 등반할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90년대 초반 클라이머들에게 유행했던 화려한 타이즈를 입은 클라이머들을 동경했고, 힐 훅, 피겨 포, 드랍 니 외 잡지에서 소개했던 여러 기술들을 직접 해보기도 했죠. 그렇게 클라이밍에 대한 사랑은 점차 커져만 갔고 다른 종목보다도 특히 리드 등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1살에는 선수로써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들었고 그러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등반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며 쟁취하는 승리의 기쁨은 저를 월드컵과 월드 챔피언십 무대로 향하게 했고, 그렇게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루트들을 등반했습니다. 그때의 목표는 하나였죠. 매일 어제보다 조금씩 더 어려운 루트를 등반하는 것.

상상해 보세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2009 월드 챔피언십이 딱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겁이 나고 두려운데 이걸 계속해야 할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가 충분히 강한지 계속해서 의심을 멈추지 못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지난날과 목표를 떠올려야 합니다. 저에게 불가능은 없으며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던 제 우상들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저도 그들과 함께 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눈을 감자 어린 시절 제 첫 대회가 떠올랐습니다. 사이즈가 너무 커서 몸에 잘 맞지 않았던 하네스와 무릎까지 내려왔던 퀵드로우가 눈앞에 생생했죠. 그날의 중압감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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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avi Pec

2009년 7월 8일, 그렇게 두 달이 흘러 대회 당일이 되었습니다. 결승 루트를 완등하고 내려와 허리에 묶인 줄을 풀려는 찰나, 예상치도 못했던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하게 됩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완등해버리는 클라이밍 기계 같은 젊은 친구, 아담 온드라를 만나게 된 것이죠. 그날 아담은 홀드 하나 차이로 2등에서 멈춰야 했지만, 그렇게 저는 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시작하게 됩니다. 클라이머로써,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가장 놀랍고 존경하는 아담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과 등반을 쉬어야 했던 2년 동안에도 아담은 저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등반을 향한 그의 열정은 언제나 강렬했고, 끊임없이 스스로와 싸우고 목표한 대로 등반하고자 하려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죠. 전염성이 큰 그의 활력은 그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암벽화를 신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부상 때문에 전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클라이밍은 다시 한번 제 삶의 일부가 되었죠. 지금은 머리도 많이 빠지고 나이도 많이 들어 온몸 이곳저곳 쑤시지 않는 곳이 없지만 내면의 힘만큼은 더 강해졌다고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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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일생의 절반 이상을 등반에 바친 저는 오늘날까지도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클라이밍은 스포츠로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죠. 저는 아담과 함께 올림픽과 같은 큰 무대에 설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올림픽이 현실이 되어 매우 기쁩니다. 스포츠를 대표하는 많은 어린 선수들과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노장들이 모두 무대로 나와 우리가 사랑하고 일생을 바쳐 노력해온 것들이 무엇인지 세계에 보여 줄 수 있는 올림픽 무대, 그것이 리드건 트레드건 볼더링이든 간에 우리는 종목을 불문하고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더 높이, 더 강하게!

-블랙다이아몬드 앰배서더 팍시 우소비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