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메딘 원더러스
낙석의 위험을 피해 가며 등반 끝에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 일촉즉발의 상황과 직면했다. 주변에 먹구름이 끼며 천둥번개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귀가에 매미소리가 들리며 금속장비를 찬 하네스 주변이 찌릿하고 따끔한 게 언제 번개가 칠지 모를 상황이었다. 우리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하며 황급히 장비를 벗어던지고 몸을 피했다.
석주를 처음 만난 건 재학생 시절 설악산 동계종주 때였다. 각자 학교 최고참으로 참석했고, 그해 유난히 눈이 많아 고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치며 우직한 눈빛과 과묵하지만 따듯한 말투. 산냄새가 유난히 짙게 베어나는 후배였다. 내가 선배여서 다행이란 생각과 동시에 산에 다닌다면 계속 볼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의 부상과 수술에도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곧장 산으로 향하는 등반에 대한 열정이 큰 친구여서 많은 귀감을 받았다.
졸업 후 등반을 하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갈 때도 우리는 각자의 등반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산에서 오가며 마주치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레 줄을 묶게 되고 2017년 어느 겨울날 김진석, 우석주 김우경, 필자 이렇게 넷은 더 큰 등반을 꿈꾸게 된다.
각자의 사정으로 넷이 둘이 되다
본격적인 등반에 앞서 팀웍을 다지고자 각자의 시간을 최대한 할애하여 훈련 등반을 했다. 구곡폭포 야간등반, 토왕폭~대청봉 연장 등반, 노백인우주선(노적봉, 백운대, 인수봉, 우이암, 주봉, 선인봉) 무박 야간등반이 대표적이다. 이런 등반만으로도 기존에 우리가 하던 등반보다 힘들었지만 진취적이고 보람 있었다.
북한산 숨은벽에는 ‘넷이 하나되어‘ 라는 루트가 있다. 초반에 같이 이번 등반을가기로 4인은 다녀와서 이 코스를 등반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가려 했지만, 아쉽게도 각자의 사정이 생겨 석주와 나 둘만 가게 된다.
알라메딘 산군에대한 약간의 정보와 지도 한장만 들고 각각 40kg에 육박하는 2주간의 장비와 식량을 메고 배낭에 짓눌려 꼬리뼈가 까져가며 힘겹게 베이스를 향했다.
이틀 안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계획이었으나, 운행 이틀째 뭔가 잘못된 걸 느꼈고, 날씨가 궂어져 텐트를 치고 하루 쉬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 빗방울 소리 사이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하니 우크라이나 트레킹팀이 인사를 받는다.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 위치를 묻자 너무 올라왔다며, 다시 되돌아 내려가야 한다고 설명해줬다.
비가 잦아들자 서둘러 짐을 꾸려 온 길을 다시 돌아간다. 자정에 샬릭계곡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필자는 목동의 빈 움막이 있어 거기서 벼룩과 함께 자고, 석주는 밖에서 비박을했다.
다음날 필자는 등의 피부가 벗겨져 하루 쉬고 석주가 정찰하러 다녀오기로 했다. 쉬는 동안 텐트에 방수액을 바르고 정수필터에 구멍이 난 곳을 수선했다. 가져온 위성 전화 수신상태를 확인하려 했으나 연결이 되질 않는다. 장비정비를 하고 있는데, 어제 만난 트레킹팀이 하산하다 쉬는 게 보여 인사했다.
고맙게도 의약품이 있는지 물어보고는 진통제를 건네준다. 정찰을 다녀온 석주와 내일 운행을 논의하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7시 야영지에서 출발하여 가파른 모레지역을 통과해 13시간 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모레가 많고 식수에 석회가 많아 적합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늦어 우선 텐트를 치고, 다음날 오전에 정찰을 해서 그나마 맑은 물을 찾고 텐트 치기 적당한 장소도 찾았다. 식수를 뜨고는 텐트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베이스캠프를 옮겼다.
우쉬첸카 동봉(4650m)으로 오인. 샬릭바쉬봉 북동벽(4500m)등반.( 8월 16일(목))
8월 16일 계획대로 3시기상하여 마운틴하우스 1봉을 먹고 준비 후 4시에 출발했다. 이스트우쉬첸카(4650M). 렌턴을끼고 어프로치하여 7시반에 벽앞에 다다렀다. 가위바위보로 선등을 정했다. 석주가 먼저 선등. 쉬운곳은 연등으로 신속히 등반하고 크레바스를 넘어 90미터 정도 내가 선등을 했다. 60미터 로프가 다 나갈즈음 알아서 세컨이 출발하기로 했다. 경사가 많이 가파르진 않지만 확보점을 만들기 전에 한 사람이 실수라도 하면 둘 다 추락할 수 있기에 각자 신중하게 등반했다.
처음 정상까지 그린 물음표 모양의 바위를 지나는 수직의 등반선이 해가 뜨자 낙석이 심해져 우회하기로 결정한다. 뒤이어 온 석주가 바로 우측으로 트레버스하여 피치를 끊고 내가 70미터 가량 선등을 한 뒤 3피치를 연달아 석주가 선등을 했다. 2번의 연등을 하고 마지막 믹스구간을 어렵게 올라 정상부에 도착했다. 3시50분경. 주변으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번개소리가 들린다. 귀에 매미우는소리가 들리고 금속장비들을 찬 곳이 따끔따끔 후벼파온다. 옆구리며, 장비에 닿은 곳들이 찌릿찌릿하다. 사진촬영은 생각도 못하고, 금속장비부터 다 배낭으로 신속히 때려 담고 몸을 피했다.
잠시 후 좀 잦아든 틈을 타 정상사진 촬영 후 장비를 서둘러 챙겨 하산을 시작한다. 동봉의 동쪽 어깨라인 커니스를 걸어 내려간다. 석주가 먼저 가고 내가 뒤따른다. 뒤로는 우르릉 소리가 계속되고 맞은편 봉우리엔 무지개가 멋드러지게 떳다. 빙하지대까지 내려가서 기념 사진을 찍고 안도하며 베이스로 향하는데 우박이 쏟아진다. 지친걸음으로 터덜터덜 베이스에 도착하니 8시 반. 17시간 동안 쉼없이 운행을 했다. 젖은 장비들을 널어놓고 정만선배가 준비해주신 카레밥과 소고기무국을 먹었다. 내일은 푹 쉬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우리가 오른 봉우리가 우쉬첸카 동봉이 아닌 샬릭바쉬 봉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가 더 쉬기로 하고 잤다. 10시쯤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 위성 전화 가 연결이 됐나 싶어 나가보니 석주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둘밖에 없던 곳인데.. 자세히 보니 교정이었다. 그 뒤로 홍석이, 대은이, 혁제가 보인다. 우리보다 긴 일정으로 키르기스탄에 와 등반을 마치고 쉬다가 고생하는 형들 삼계탕을 끓여주겠다고 사흘 동안 올라왔는데 와서 보니 닭을 안 챙겼다 한다.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위성 전화가 불통인 상황이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교정이와 대은이가 우리가 등반하는 동안 남아있기로 했다.
키르기스스탄 봉 북동 벽(4800m) 등반(8월 19일(일)~20일(월))
당초 계획은 우쉬첸카 동봉(4650m), 우쉬첸카 서봉(4600m), 키르기스스탄 봉(4840m) 세 봉우리를 등반하기로 했으나, 운행 가능한 일정이 부족하고 식량과 체력적 문제로 키르기스스탄 봉을 오르고 철수하기로 했다. 신속한 등반을 위해 등반 전날인 18일 목요일에 정찰을 가며 장비를 벽 앞에 갈무리해두고 내려왔다. 베이스 복귀 후 휴식을 취하는데 구름이 끼더니 우박이 내렸다. 머무는 동안 날씨를 따져 보니 이틀은 맑고 이틀은 비가 오는 주기였다. 본래 키르기스스탄은 건조한 기후의 나라였으나, 기상이변으로 비가 잦아졌다. 등반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갈무리해둔 장비를 회수해서 철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2시 기상하여 마운틴하우스와 보이차를 먹고 말린 이중화에 밑창을 넣고 준비를 한다. 텐트 안에 버너를 잠시 켜고 몸을 녹이다가 2시 50분즈음 출발하여 장비 갈무리 지점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간밤에 눈이 꽤 쌓여 한시간 동안 갈무리해둔 장비를 찾았다. 장비를 착용하고 한시간 정도 걸어서야 첫피치 시작점에 도달한다. 첫피치가 보기보다 어려웠다. 연등으로 2피치를 가다가 좌측으로 트레버스 구간은 내가 선등했다. 예정했던 루트로 오르려 하자 바위에 얇게 눈만 덮여 확보물 설치가 불가능하여 좌측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믹스구간 2피치를 석주가 선등했다. 등반하면서 눈을 걷어내야 확실히 바위가 보여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뒤로 번갈아 선등을 하다가 저녁7시가 되자 어두워지며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큰일이다. 지난번 샬릭바쉬봉 등반 때처럼 낙뢰라도 치면 피할 곳도 없다. 키르기스스탄 봉의 어깨 부근 4600고지에 설동을 파고 비박 준비를 했다. 엉덩이만 걸터앉을 정도로 설사면을 깎고 챙겨간 석주의 타프를 좌우에 스크류로 고정하고 뒤집어 썻다. 이 정도면 하나도 안 춥겠다고 낄낄대며 아늑함을 느낀 것도 잠시 바람이 불자 타프가 들썩였고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안개가 자욱해 시야는 좋지 않았으나 비나 눈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과 엉덩이, 등이 시려왔다. 서로 깊이 잠들면 안 된다고 깨우며 서운한 거 있으면 지금 말하자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도 서로 크게 한건 없었다.
다음날 6시 15분에 반가운 해가 떴다. 햇빛에 몸을 좀 녹이다가 8시 30분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커니스로 하산을 하는데 생각보다 위험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걸어서 하산다가 더는 걷는 것이 무리라 판단해 하강을 시작했다.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V스레드(아발라코프)를 하여 다음 하강 준비를 했다. 둘 다 V스레드 설치를 몇 번 안 해 봤는데 한 번에 잘 설치했다. 생각보다 부실한 얼음에서도 튼튼했다. 교차해가며 하강하던 중에 석주가 수평으로 구멍을 내어 설치하는 V스레드보다 수직으로 구멍을 내는 A스레드가 더 좋다 하여 그 뒤로는 A스레드로 하강했다. A스레드는 다음 포인트에서 로프를 회수할 때 방향성에 영향을 덜 받아 당기기가 더 수월했다. 간밤의 비박 때 와는 다르게 오늘은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도 평화로웠다.
약 18번의 하강 끝에 하단 세락 근처까지 내려오고 마지막은 좀 가파르긴 하지만 시간 절약을 위해 각자 클라이밍 다운을 했다. 무사히 내려온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었다. 하강 중 석주와 너무도 고요하고 날이 좋아 혹시 우리가 어제 비박 중에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했다.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베이스를 보니 텐트가 안 보였다. 교정, 대은이가 우리가 잘못된 줄 알고 철수해서 한국에 연락이라도 했다면 큰일이다. 걱정되어 최대한 서둘러 내려간다. 내려가는 중에 빙하 물소리가 웅장한 군중의 노랫소리처럼 들려 석주에게 너도 그러하냐 물어보니 그렇다 한다. 혹시 우리는 의식 속에 있고 몸은 잠들어 이송 중인데 그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닐까 섬뜩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베이스캠프에 가까워지자 우리 텐트가 보였고 좌우로 빨간 점이 2개 보였다. 베이스에 19시즘 도착하니 교정,대은이가 밥을 해두고 반긴다. 전날 새벽 3시에 출발했으니 거의 40시간만의 복귀였다. 정만 선배가 준비해주신 김치찌개와 밥을 먹었다. 생에 최고의 김치찌개였다. 후배들은 계속 망원경으로 우리 비박지를 보다가 하강을 다 할 때쯤 밥을 안쳐 놓고 마중을 나왔다가 서로 엇갈려 다시 내려갔다고 한다. 저녁을 맛있게 마시고 젖은 장비를 널고는 무사히 돌아온 것에 안도하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오기로 한 정선생님의 차량과 만나기 위해 철수를 서둘렀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서둘러 내려가려 했으나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체력이 남아있는 교정, 대은이가 먼저 가서 정선생님을 기다리기로 하고 석주와 나는 지친 몸을 끌고 최대한 서둘러 내려간다.
하산길에 생각해보니 열흘이 넘는 동안의 산행이 하나하나 스쳐간다. 석주와 나 둘 다 이런 식의 소규모 알파인 등반은 처음인데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소똥 말똥에 모여든 파리들을 보며 산에 모이는 산쟁이 들과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등반대명 : 알라메딘 원더러스 2018,
*등반기간 : 2018년 8월 9일~ 26일(이동시간 포함 17박18일)
*등반지 : 키르기스스탄 알라메딘산군 내 우쉬첸카 동봉 북동벽, 키르기스스탄봉
*등반지 개요
악사이 산군에 매년 많은 등반가들이 방문하고 산장 등의 편의 시설이 있는 것에 비해 알라메딘 강의 동쪽에 형성된 알라메딘 산군은 편의 시설은 고사하고 등반을 위해 찾는 등반가들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알라메딘 강을 따라 헤맨 5일간 두 팀을 마주쳤을 뿐이며 한 팀은 두 명과 한 마리로 구성된 백패커였고 다른 한 팀도 가벼운 장비만 소지하고 빙하지대나 패스를 넘는 트레킹 팀 정도로 추측된다. 알라메딘의 샬릭 빙하로 들어선 이후로는 단 한 명의 등반대도 만나지 못했으며 우리 팀의 등반을 응원차 트레킹을 온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재학생 팀만 만났다. 한국에서 조사할 때 알라메딘 산군의 어느 봉우리를 등반한 기록은 찾지 못 했고 빙하와 패스를 넘나드는 며칠 간의 트레킹 기록만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알라메딘 산군의 각 봉우리, 혹은 봉우리의 주변으로 개척된 등반 루트들의 표를 찾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 1960년대 개척이 된 것으로 나오고 그 마저도 러시아어로 되어 있어 해석에 어려움이 많았다. 번역기를 이중으로 돌려가며 해석한 결과, 표에 표기된 각 봉우리의 루트들은 대부분 몇 단어로 기록된 방향 설명 정도였으며 등반 라인을 추측해볼 만큼 자세하지 못했다. 이후에 표를 첨부하여 키르기즈스탄 산악연맹으로 문의 이메일을 보내 봤지만 마찬가지로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현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며 사진과 글의 정리가 끝나는 대로 촬영한 사진과 우리의 등반 라인, 위의 표를 대조하여 다시 문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