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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마인드 코치가 되었는가? -헤이즐 핀들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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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저는 피크 디스트릭트의 밀스톤에서 한 여성 클라이머를 코칭하고 있었습니다. 추락 훈련과 플로우 훈련을 거쳐 마침내 실전에 투입된 그녀는 그날 그녀의 등반 역사상 가장 어려운 그레이드를 온사이트 하기 위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크럭스 구간에 다다르자 심하게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여러분처럼요.) 밑에서 지켜보던 저는 그녀가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침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장비를 대충 아무렇게나 확보한 그녀는 “텐션!”을 외치고 싶어 했죠. 그녀는 제 지시에 따라 먼저 설치한 확보물 밑에 두 번째 캠을 설치하고, 위로 조금 더 등반한 후 추락했습니다. 그러자 먼저 설치한 위쪽의 캠이 빠지면서 느슨해져버린 로프가 다리에 걸렸고, 위아래로 뒤집힌 채 추락한 그녀는 줄에 매달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클라이밍 인생을 바꾸어 놓았을 수도 있는 찰나의 경험 후에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경험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두려워서 그녀가 다시는 도전하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면 오히려 이번 경험이 그녀의 클라이밍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이었을까? 다행히도 정답은 후자였습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그녀는 다시금 루트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가 지금껏 시도한 온사이트 등반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루트입니다. 아름답게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을 듬뿍 받으며 그녀는 마침내 완등에 성공합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그녀는 저에게 자신이 올여름 그녀의 최고 레드포인트 기록을 깼다는 소식과 함께 감사하다는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덕분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등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죠.

저는 지금까지도 브리스틀시 언더 커버 락 클라이밍 짐에 있던 7a 프로젝트의 크럭스 홀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작은 바나나처럼 생긴 홀드였는데, 당시 9살이었던 저의 작은 손에 딱 맞아서 의욕을 가지고 시도했던 루트였죠. 지금도 그때의 바나나 홀드를 떠올리면 그 당시 암장에서 맡았던 냄새, 오래된 교회 건물에 수년간 쌓인 퀘퀘묵은 먼지와, 점심시간에 맡았던 커피향과 같은 그때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몰려오곤 합니다. 탑 로프로는 완등했던 루트인데, 기어코 리드로 등반하고 싶었던 게 생각납니다. 리드로 해야만 진정한 완등이라는 느낌에 그랬지만, 동시에 굉장히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찍이 클라이밍에 대한 두려움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저는 용감하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사우스 웨일스의 트레드 클라이밍 지역인 펨브룩에서 남자 어른 두 분이 저에 대해 수군대는 걸 들은 적이 있죠. “쟤가 블루 스카이를 완등한 애래.!” “고작 10살짜리가 우리보다 용감한데?”라고요. 당황한 저는 그들이 저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심받는 게 굉장히 싫었고, 지금까지도 너무 과한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수줍음 속에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내가 더 뛰어난 클라이머니깐 완등했지. 내가 어리고 작다고 해서 경험이 부족한 건 아니라고.”라고 말하고 싶었죠. 등반은 나이, 성별, 신체 조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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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등반을 억지로 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등반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겁이 날 때가 있었죠. 학교 축제를 위한 옷을 사러 친구들과 쇼핑하러 가고 싶었고, 90년대 유행하던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방학 때는 해변 대신에 등반하러 가자는 아빠의 제안이 짜증 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필드하키에 빠지기도 했었죠. 등반을 향한 애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풍부해진 소녀감성 덕분에 등반을 멀리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의욕, 두려움, 그리고 자신감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의욕이 솟구쳐 오르다 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의욕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고 견뎌내면 다시 밝은 날이 오는 것이라고 믿었죠.

다행히도 저에게는 이런 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저희 아버지죠. 아버지께서는 제가 두려울 때면 추락 연습을 하도록 지도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등반을 향한 그의 태도였는데, 아버지 세대의 다른 트레드 클라이머들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선등하는 사람은 절대 떨어져서는 안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떨어지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은 거야.”라고 말씀하셨죠. 제가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저는 17살에 저와 비슷한 생각과 관점을 가진 잘생긴 남자를 만나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등반했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제가 얼마나 용감하고 자신감에 차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제가 남자였다면 듣지 않았을 이야기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들었죠.

안타깝게도 저는 학교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나름의 사회적인 이유로 대학교에 진학해야만 했습니다. 별 의미 없는 과목에 대한 공부를 3년간 마치자 대학에서는 저에게 철학 학사 학위를 주더군요. 대학교에 있을 때 아그로 일그너의 “더 락 워리어즈 웨이(The Rock Warrior’s Way)”라는 책을 읽었는데, 제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된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저의 멘탈이 강해지고 있고 스스로가 더 나은 클라이머가 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멘탈을 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력 또한 단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뿌려진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나 지금은 작은 식물이 되어 코칭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씨앗을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클라이머를 위한 멘탈 트레이닝 강습은 현재 약 500명의 강습생이 수강하고 있으며 한 명의 강사가 진행합니다, 바로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