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빈 시걸 : 클라이밍으로의 귀환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선수 토빈 시걸은 고산의 급경사 면을 타는 스키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눈 속 세계로 들어가 스키어가 되기 전, 그는 과거에 경쟁력 있는 클라이머였습니다.
그는 익스트림 클라이밍의 선두자인 토미 콜드웰이나 소니 트로터와도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그들과 함께 전 세계 여러 곳으로 등반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시걸 선수가 오롯이 스키에 전념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하네스와 쵸크백은 자연스레 그의 삶에서 멀어졌습니다.
지난여름 다시 한번 클라이밍의 매력을 맛보게 된 시걸 선수는 그의 열정을 사로잡은 스키와 클라이밍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란은 차분하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루트에서 살짝 벗어나 있긴 하지만, 운이 좋으면 이대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저기 튀어나온 홀드는 잡지 마. 불안해 보여.”
저는 부서질 위험이 있는 홀드를 피해 조심히 움직였습니다. 부서져 날카로워진 홀드가 로프를 끊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토블론 초콜릿처럼 생긴 절벽 정상 근처에 다다랐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발 밑 1200m 아래에는 길게 뻗은 자동차 불빛으로 빛나는 고속도로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고속도로에 드리우는 어둠과 대조되는 금빛의 석양이 계곡을 덮었고, 이빨 모양의 노스 캐스케이드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좁은 길목을 찾아갔어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페이스 구간으로 잘못 들어섰습니다. 눈앞에는 아찔한 경사면이 펼쳐졌고, 전 그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10년 만에 처음 하는 고산 등반이기에, 제가 완등 할 수 있을지 계속 걱정스러웠습니다.
글, 사진 : 토빈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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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란 곳은 스키를 탈 수 있는 언덕이 많은 밴쿠버 북부였습니다. 방과 후에는 부모님과 함께 스키를 타곤 했으며 십 대 시절에는 클라이밍에 빠져 전 세계를 여행하며 등반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인 중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세계를 여행했던 경험이 주변 자연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고, 일생 처음으로 스키 이외에 좋아하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입니다. 소니 트로터나 크리스 샤마 그리고 토미 콜드웰 등이 그 당시 저의 라이벌이었습니다. 그들 모두 그 당시에도 여러 유명한 루트를 완등한 훌륭한 선수들이었죠. 하지만 저는 스키에 대한 애착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스키에 전념을 다하기 위해 클라이밍을 완전히 그만뒀었죠.
지난 10년간, 세인트 일라이어스 산계, 알래스카 산계나 배핀 섬과 같은 곳으로 스키 탐사를 다녔습니다. 클라이밍계에서는 완전히 나왔으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클라이밍 잡지를 열었는데, 제 친구였던 소니가 노련한 프로 선수로서 역사에 남을 등반을 하고 있다는 글이 저에게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클라이밍을 다시 시작하는게 선뜻 망설여졌습니다. 나이 든 제 자신이 쇠퇴한 근육으로 추락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결국 제 친구 중 한 명이 저를 납치하다시피 해서 바위로 데려갔습니다. 어려웠고, 불편했습니다. 제가 매일 하던 것들인데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저를 끌어당겼고, 하루하루 클라이밍을 점점 더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등반지는 사람들로 붐볐고 제가 떠났을 때보다 많이 바뀌어있었습니다. 스키 여행에서 느꼈던 동지애가 그리웠습니다. 다시 고산으로 향하고 싶었죠.
어느 날 암장에서 제 스키 파트너였던 타란 오르트립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제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사실 그는 여름은 클라이머, 겨울은 스키어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는 친절하게도, 손가락도 약하고 다리도 후들거리는 저에게 같이 등반하러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는 며칠간 재밌게 리드 등반을 다녔습니다. 스키와 클라이밍 그리고 삶의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그는 제가 스키와 클라이밍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제가 그리워하던 우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제가 그에게 더 도움이 되었어야 맞는 것이지만요. 우리는 리드에서 트레드 클라이밍으로, 결국엔 고산 등반까지 나아갔습니다. 10년 만에 처음 하는 트레드 클라이밍은 꽤나 불안했어요. 제가 선등을 했는데, 타란이 등반을 마치고 하강한 저의 장비들을 살피면서, 제가 거의 혼자 등반했다고 말했습니다. 뜨끔했죠.
곧바로 우리는 캐나다 스쿼미시 도시 하브리치 산에 60m 짜리 화강암 피치 다섯 개가 합쳐진 ‘라이프 온 어스(Life on Earth)’ 루트를 목표로 했습니다. 첫 피치 등반 중 캠코더를 떨어뜨릴 만큼 고전했지만(이것 때문에 나중에 벌칙으로 맥주를 샀습니다), 세 번째 피치부터는 선등을 하며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살짝 겁이 났고 루트도 꽤나 어려웠지만, 결국 완등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서 고향을 내려다보니 짜릿했습니다. 탁 트인 환경이나 동작들이 제가 등반했던 루트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훌륭한 루트였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워싱턴 패스에서의 어느 날, 우리는 트럭에 짐을 싣고 또 다른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와 제 친구가 사용할 장비와 로프 그리고 최소 세 명분의 초콜릿이 뿌려진 프레츨은 필수로 챙겼죠.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화강암 루트인 리버티 벨, 노스 윈터 스파이어즈에서 간단히 몸을 풀었습니다. 역시나 타란은 어려운 루트는 전부 시도했습니다. 클라이머의 삶으로 돌아오니 정말 좋았습니다.
어프로치가 가장 길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루트는 마지막 날로 미뤄두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배낭을 들쳐매고 강에 걸쳐진 위태로운 통나무를 건너 해발 900미터 높이를 끙끙대며 올라왔습니다. 옛 고산 등반의 특징은 루트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대충 쓰여 있다는 것인데, 그 덕분에 첫 피치부터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길을 찾은 후 5시간 동안의 등반은 훨씬 더 좋았습니다. 하늘 아래 탁 트인 루트에는 빌레이 하기 좋은 홀드들이 즐비했습니다. 모든 일이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정상 근처에서 다시 한번 길을 잃었을 때는 오히려 더 까다로워진 루트가 우리의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켜서 더 좋았고, 그만큼 완등 후 짜릿함도 더했습니다.
정상에 걸터앉아 서쪽 하늘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저는 저의 지난 10년을 돌아보았습니다. 다시 클라이밍을 시작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루트를 등반하는 게 아니라 친구와의 우정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클라이밍과 스키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키를 즐기는데 스키 실력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클라이밍에서도 얼마나 어려운 난이도의 등반을 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구와의 우정이 전부이며, 산을 대하는 자세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가 산을 대하는 자세가 곧 우리가 우리 삶을 대하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내년 여름 등반 여행이 기다려집니다. 사실, 저는 이미 올겨울 스키여행부터 내년 등반 여행까지의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토빈시걸